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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난희의 느린 산] 지리산 물을 백두산 천지에 부어 주었다

DailySeoulite 2024. 9. 16.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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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난희의 느린 산"이라는 소설 속 등장인물이 지리산 물을 백두산 천지에 부어 주었다는 기사 제목은 충격적입니다. 왜 남난희는 이런 행동을 했을까요? 소설 속 상상이 현실이 된 것일까요? 과연 지리산 물은 백두산 천지에 도달할 수 있을까요? 이 기사는 소설과 현실의 경계를 넘나드는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30년 만에 다시 찾은 백두산, 이번엔 형제들과 함께!

회갑 맞은 형제들의 백두산 여행

30년 만에 다시 백두산을 찾았다. 1990년대 초반, 중국 비자를 받아 백두산에 갔을 때, '다음엔 우리 땅을 밟고 가겠다'고 다짐했었다. 그 후로 백두산은 잊고 살았다. 그런데, 이번에 그 다짐을 어기게 되었다. 넷째 형제의 회갑 여행지로 백두산이 선정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형제는 회갑을 맞으면 각자 원하는 곳을 정해서 함께 여행을 떠나는 전통이 있다. 넷째 형제는 망설임 없이 백두산을 선택했다. 언제나 그리운, 언제나 가고 싶은 백두산! 형제들과 함께 백두산을 간다는 생각에 설렘은 더욱 커졌다.

우리 육남매는 각자 개성이 뚜렷하지만, 가족으로서 통하는 부분도 많다. 음식 취향부터 코드까지 맞는 부분이 많아 서로를 존중하며 살아왔다. 무엇보다 서로의 생각이 비슷해서 의견 충돌이 거의 없다. 이번 백두산 여행도 마찬가지였다. 형제들과 함께 여행을 떠난다는 것 자체가 백두산을 만나는 것만큼 설레는 일이었다.

가슴 벅찬 감동, 천지의 아름다움

백두산은 역시나 웅장했다. 물론, 중국을 통해서 가야 하는 것은 여전히 아쉬웠지만, 어쩔 수 없었다. 3일 동안 천지를 세 번이나 볼 수 있는 행운을 얻었다. 첫날은 남파 코스를 통해 백두산을 만났다. 남파는 북한과 국경이 맞닿은 지역이라 최근에 개방된 코스라고 한다. 한국인은 거의 없었고, 입산료도 다른 코스보다 비싸다고 한다.

북한과 중국의 국경은 엉성한 철조망으로 구분되어 있었다. 신기하게도 꽃들은 경계를 두지 않고 자유롭게 피어 있었다. 바로 코앞이 북한 땅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이상했다. 차를 타고 올라가는데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천지를 볼 수 없을까 봐 마음이 조마조마했다. 차 안에서 백두산 신령님께 간절히 기도했다. '제발 비가 와도 좋으니 천지를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그런데, 신기하게도 비가 그치고 천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하늘이 열린 듯, 천지가 눈앞에 펼쳐졌다. 감동의 순간이었다.

야생화 천국, 백두산 고원의 매력

다음 날, 서파 코스에서는 야생화 천국을 만났다. 높이에 따라 다양한 종류의 야생화가 피어 있었다. 넓은 고원에는 온갖 색깔의 야생화들이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었다. 나는 이렇게 많은 야생화를 처음 보았다. 이렇게 넓은 고원도 처음이다. 감탄을 금치 못했다. 이 고원에서 원 없이 걷고 싶었다.

남북 백두대간을 하나로

마지막 날, 북파 코스에서는 30년 전 백두산을 방문했을 때의 기억을 떠올렸다. 그때는 이곳만 개방되어 있었다. 하지만, 천지를 만났던 감동 외에는 기억나는 것이 별로 없다. 나는 지리산에서 떠온 물을 백두산 천지에 흘려보냈다. 남쪽 백두대간의 물을 북쪽 백두산 천지 물과 합체시키고 싶었다. '남북 백두대간을 하나로 연결하게 해달라'고 간절히 기도했다. 내 죽기 전에 북쪽 백두대간을 걸을 수 있게 해달라고. 감정이 북받쳤다.

백두산, 그 너머의 감동

이번 백두산 여행은 천지뿐만 아니라 백두산 자락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었다. 웅장한 산세와 넓은 평원, 고원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빼앗겼다. 백두산은 그 넓이가 제주의 5배라고 한다. 중국에서는 15배라고 주장한다. 일부만 봤는데도 이렇게 넓은데, 과연 다 보면 얼마나 넓을까? 나는 앞으로 특별한 일이 없는 한 중국을 통해 백두산을 가지 않을 것이다. 내 땅을 밟고 당당하게 백두대간을 타고 올라가서 백두산 정상에 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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